‘핀테크 밸리’ 5대 금융이 키웠네
2018.03.06본문
서울 도심에 국내 금융그룹들이 주도하는 ‘핀테크(Fintech) 밸리’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신한·KB·하나·우리·농협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금융그룹이 핀테크 창업을 적극 지원한 결과다. 서울 을지로(신한·하나)·서대문(농협)·영등포(우리)·강남(KB) 등에 각 금융그룹이 세운 핀테크 지원 센터는 창업 기업의 요람이 되고 있다. ‘핀테크’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혁신적인 기술과 금융을 결합해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新)산업이다.
우리나라의 대표 금융 그룹들은 그간 그룹 안에서는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을 금융과 접목하고, 밖으로는 핀테크 기업을 육성해왔다. 달아오른 금융업 혁신의 불씨를 사회로 확산시키자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2015~2016년 5대 금융 그룹이 개소한 핀테크 지원센터는 사무실 제공, 자금 조달 주선, 세무·법률·노무·특허 상담, 인적 네트워크 구축, 판로 개척 등 초기 기업에 버거운 업무를 해결해준다. 아이디어만 좋다면, 누구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 3년간 금융그룹 핀테크 지원 센터를 거쳐간 기업만 159개다.
◇핀테크 기업 ‘창업 요람’ 된 금융그룹 핀테크 지원센터
최근에는 핀테크 지원센터를 거쳐간 스타트업과 금융그룹 간 협력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작년 서울 명동에서 강남으로 확대 이전한 KB금융의 ‘KB이노베이션허브’는 지금까지 약 300개 스타트업의 핀테크 기술을 검토했다. 이 중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 100여 개 명단을 그룹과 공유하고, 이 중 43곳은 KB이노베이션허브가 직접 지원했다. KB금융 관계자는 “KB금융 계열사가 추진하는 사업에 핀테크 스타트업의 혁신적 기술을 접목해 고객들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KB금융 계열사와 스타트업의 시너지가 나타나고 있다. 개인 맞춤형 유학 중계 플랫폼 운영사업자 ‘어브로딘’은 P2P(개인 간 개인) 방식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해외 연수기관과 유학생을 직접 연결하는 서비스를 개발, KB국민카드와 카드 결제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중소사업자를 위한 매출 관리 서비스를 선보인 ‘한국신용데이터’는 KB국민카드와 가맹점주의 결제계좌·법인카드를 연계한 상품을 개발할 예정이다.
하나금융은 2015년 6월 스타트업 지원센터 ‘1Q Lab(원큐 랩)’ 개소 이후 31개 유망 스타트업을 육성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스타트업 서비스를 적극 받아들여 상생 협업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며 “직접투자부터 서비스 계약까지 사업 전 과정을 돕는다”고 했다.
실제 하나금융은 스타트업에 20억원을 직접투자했고, 간접투자도 60억원가량 운용 중이다. 작년에만 지원센터를 거친 스타트업과 12건의 협업 사업을 진행했다. 하나금융이 10억원을 투자한 인공지능 전문 스타트업 ‘마인즈랩’은 KEB하나은행의 대화형 금융 플랫폼 ‘HAI뱅킹’ 서비스 개발에 합류했다. 자산관리 전문 스타트업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는 KEB하나은행과 함께 ‘HAI로보’ 자산관리 서비스를 개발했다. 작년 말엔 지원센터 이름을 ‘원큐 애자일 랩(1Q Agile Lab)’로 바꾸고, 센터를 확대·개편했다.
◇해외까지 확장된 핀테크 육성
국내 핀테크 육성 성공 경험은 해외 스타트업 지원까지 확대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국내 핀테크 육성 경험을 해외로 확장시키고 있다.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신한 퓨처스랩(Future’s Lab)’은 신한금융 주요 계열사가 참여하는 핀테크 지원센터다. 2015년 개소 이후 거쳐간 스타트업이 61개에 달하고, 신한금융이 직접 투자한 17곳의 기업가치가 1000억원을 넘겼다. 21개사를 선발한 최근 4기 모집은 308곳이 신청할 정도 인기를 끌었다.
신한금융은 신한 퓨처스랩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2016년 베트남에 핀테크 육성센터 ‘신한 퓨처스랩 베트남’을 세웠다. 입주·사무 공간 제공, 신한베트남은행의 금융 노하우 전수, 전문가 멘토링을 통한 사업 모델 구체화 등의 생애주기별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또 베트남 호찌민시 과학기술국, 베트남 최대 스타트업 지원 기관 ‘사이공 이노베이션 허브’ 등과 협력해 현지 유망 핀테크 육성뿐 아니라 한국 창업 기업의 베트남 진출도 적극 돕고 있다.
◇’핀테크 데이’로 투자자와 스타트업 연결
금융그룹은 핀테크 스타트업의 성공을 돕기 위해 물적 지원뿐 아니라, 전문 조력가 집단을 꾸려주고, 투자자 만남을 주선하는 등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까지 만들어주고 있다.
우리은행의 핀테크 지원 센터 ‘위비 핀테크랩’은 스타트업에 ‘맞춤형 코치’를 붙여준다. 벤처캐피털, 금융 및 IT 교육기관, 법률 및 특허 전문 기관 등 15개 전문 기관이 멘토로 활동한다. 해외 진출을 원하는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영국 등 해외 액셀러레이터(창업 지원 기업)과도 제휴 중이다. 매년 개최하는 ‘위비핀테크데모데이’에서는 투자자·학계 전문가를 초청해 기업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을 소개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강한 멘토링은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곳을 거친 12개 스타트업이 유치한 외부 투자금은 64억원에 달한다. 공급 계약을 38건 체결하고, 정부 지원 사업에도 21건 선정되는 등 서비스 상용화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1기 업체인 AI 금융 기업 ‘에이젠글로벌’은 지난달 AI 관련 특허 등록을 완료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액셀러레이터와 스타트업이 좀 더 긴밀히 협력할 수 있도록 상반기 중 핀테크랩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NH농협금융의 핀테크 지원센터 ‘NH핀테크혁신센터’는 핀테크뿐 아니라 농업·농촌 관련 스타트업도 육성한다. 창업 기업의 투자 유치·판매 등을 위한 투자 설명인 ‘NH핀테크 피칭데이(Pitching Day)’와, 창업 경연대회인 ‘농업핀테크 해커톤(Hackathon)’이 유명하다. 해커톤은 해킹(Hacking)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다. 24~48시간 내외 동안 기획자·디자이너·개발자 등이 팀을 이뤄 마라톤을 하듯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프로그래밍해서 시제품 단계 결과물을 만드는 대회다. 작년 대회의 경우 수상팀 8팀을 가리는 데 28개 팀이 참여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NH농협금융의 지원에 힘입어 농산물 생산자의 실시간 생산 정보를 알려주는 스타트업 ‘케이파머스’, 농산물 직거래 장터 플랫폼을 만드는 ‘팜토리’, 농촌 마을회관을 에어비앤비같이 활용하는 ‘닉컴퍼니’ 등 혁신 기업이 탄생하고 있다.
양모듬 기자